사람을 보듬는 ‘적정기술’

농사를 지어 하루 2달러 수입으로 살아가는 가족이 있습니다.

한 마지기 땅에 온 가족이 매달려 농사를 짓지만, 가뭄이라도 들면 하루 2달러 벌이는커녕 굶어야 할 처지입니다. 수도도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은 10km나 떨어진 개울에서 물을 떠와야 합니다. 개울까지 가다 보면 목이 타 들어가지만 가축 분뇨로 오염된 물을 바로 마실 순 없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무거운 물 양동이를 이고 나르다 보면 목과 허리에 탈이 나곤 합니다. 하지만 병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물을 끓여 먹으려 해도 숲이 사라져 불태울 장작마저도 귀합니다. 가축 배설물을 태워보지만 연기가 너무 독하기만 합니다. 매일 유독 연기를 마셔서인지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밤이면 모기들이 달라 들어 피를 빨아댑니다. 모기는 참을 수 있지만 말라리아가 무섭습니다. 며칠 전 막내는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가족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빈곤과 불행은 범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인구 28억명 (세계은행 통계)
  • 안전한 식수를 이용할 수 없는 어린이 4억명 (유니세프 통계)
  •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2억7천만명 (유니세프 통계)
  • 영양실조에 걸린 인구 8억4천만명 (CARE 통계)
  • 나무, 가축 배설물, 석탄 등 바이오매스 연료를 사용하는 인구 30억명(세계보건기구)
  •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매년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인구 100만명(세계은행)

선진국, NGO, 다국적 기업 등이 지구촌 빈곤을 뿌리뽑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빈곤한 사람 모두를 돕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일부만 돕는다 해도 돈이 중간에 다른 대로 새곤 했습니다. 설령 제대로 전달되었어도 원조가 중단되는 순간 다시 빈곤은 찾아왔습니다.

과연 지구촌 빈곤을 퇴치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기술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하루 2달러, 아니 1달러만으로도 생계가 유지되도록 초저가 생필품을 만들고, 소득을 늘려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초저가 생산 도구를 만들자고 합니다. 한마디로 적은 돈으로 생존하고 나아가 돈까지 벌 수 있게 돕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명쾌한 해법인가요. 하지만, 100달러짜리 집처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가격을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에 기술 혁신이 요구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첨단을 달릴 필요까진 없습니다. 적정기술은 때로는 과거로 퇴보해 선진국에서 폐기한 옛 기술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적정기술은 ‘중간기술’로도 불립니다. 따라서 적정기술에서 말하는 혁신은 빈곤층의 구매력에 맞춰 기술을 개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앞서 예를 든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적정기술 제품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 대나무 페달 펌프(Bamboo treadle pump) : 논밭에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간이 수동 펌프입니다. 페달과 지지대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대나무로 사용해 제조원가를 낮췄습니다. 사람을 동력으로 사용하기에 전기도 필요 없습니다. 구입비는 늘어난 수확물을 팔면 6개월 안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 구르는 물통, 큐드럼(Q-Drum) : 75리터들이 물통입니다. 바퀴처럼 생겨서 어린아이들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습니다.

■ 생명의 빨대, 라이프스트로우(LifeStraw): 빨대처럼 생긴 휴대용 정수기입니다. 고기능 필터가 들어가 있어 오염된 개울에서도 안전하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줍니다.

▲ 이미지 출처: 책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적정기술 ‘ 표지

■ 숯 드럼통 가마와 숯 제조기: 사탕 수수 농가에서 버려지는 사탕 수수 줄기를 숯 재료로 활용합니다. 연기도 덜 나고, 오래 타며, 단단 해서 상품으로도 내다 팔 수 있는 숯이 만들어집니다.

■ 살충 모기장: 살충제를 함유한 폴리에스터로 만든 모기장으로 살충 효과가 4년 정도 지속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적정기술 제품들을 살펴보면, 가격을 낮추고 생존과 자립을 돕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들이 더 발견됩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인력을 동력으로 사용합니다. 크기도 작습니다. 적정기술의 혁신에는 마치 여러 가지 원칙들이 있는 듯합니다.

또한 이 제품들에는 상품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빈곤 퇴치를 비즈니스로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겠죠. 게다가 제품 생산, 유통, 유지, 보수 등 적정기술 관련 비즈니스 생태계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적정기술은 어려운 개념인 것 같습니다. 마치 과학기술에 인문사회, 경제경영 등을 뒤섞어 놓은 듯 합니다.

도대체 적정기술은 무엇일까요.

이번 소셜잇수다에서는 적정 기술을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 적정기술의 국내 개척자 중 한 분인 한밭대 홍성욱(@suhong65)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적정기술미래포럼 대표와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홍교수님은 다양한 산학 협동 프로젝트와 정부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적정기술 아카데미를 열어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분입니다. 불과 며칠 전에는 공저로 참여한 ‘인간 중심의 기술, 적정 기술과의 만남(에이지21 펴냄)’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홍 교수님께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적정기술이 뭔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제3세계의 절대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우리나라와 다른 선진국의 상대적인 빈곤층에도 관심을 가지는지, 비즈니스 면에선 어떤 의미가 있는지와 현재 국내 도입 현황에 대해서도. 마지막에는 적정기술을 더 배워볼 수 있는 방법도 물었습니다.

홍교수님은 적정기술을 한마디로 인간 중심의 기술로 정의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치료가 의술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적정기술이라고 합니다. 인간 중심의 기술이기에 도시 빈민층도 다 적정기술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소셜 벤처로 도전해 볼만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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