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와 건물 옥상 등지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 농업인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 떠오릅니다.
‘그래. 도시 농업인들을 위한 SNS를 만들어 보는 거야. 같은 도시 농업인들끼리 친분도 쌓고, 정보도 교류하게 해 주고… 애견인들만을 위한 SNS, 패션 스타일 정보만 공유하는 SNS도 있는데 이거라고 안되란 법이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합니다.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집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랬다가 누군가 내 아이디어를 훔쳐갈까 걱정이 됩니다.
결국 친한 친구한테도 비밀에 부칩니다. 그리곤 100페이지가 넘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후 웹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를 고용해 서비스 개발을 시작합니다. 물론 함구령을 빼 놓진 않습니다.
“이 아이디어 절대 다른 사람한테 발설하면 안됩니다.”
몇 달이 지나자 서비스가 완성됩니다. 이제 대박나는 일만 남았을 거란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려집니다.
드디어 D-Day.
‘짜잔’하며 사람들에게 서비스 개시를 알립니다.
아…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세상이 깜짝 놀라 박수 쳐 줄 거라 기대했건만 시큰둥하기만 합니다.
“홍보 부족 탓일 거야.”
없는 살림에 홍보 광고를 해 봅니다. 하지만, 역시 반응이 없습니다. 광고비를 쓰다 보니 실탄이 바닥나기 시작합니다. 투자자를 찾아 나서지만, 어떤 투자자도 고객 없는 서비스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용자 한 사람이 아쉬운 마음에 도시 농업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다녀봅니다.
역시는 역시나입니다.
“이미 도시 농업과 관련된 온라인 카페들이 많은데 그 서비스를 왜 써야 하죠?”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밴드에도 도시농업인 그룹이 많아요”
“네이버에서 검색만 해도 도시 농업 관련 정보들을 다 찾을 수 있는데…”
온라인 카페들을 뒤져봅니다.
이런… 수 십 개의 카페가 나옵니다. 회원 수도 많게는 수십만명이나 됩니다. 콘텐츠는 좋기만 합니다.
뭔가 해 보겠다며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한 도시 농업인 분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줍니다.
“그거 말고 차라리 도시 농지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건 어때? 요즘 공유 경제, 공유 경제 하잖아. 도시 농업에 관심은 있지만 땅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도 있고, 옥상이나 텃밭을 가지고 있지만 그냥 놀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잖아. 서비스를 만들어 그런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거지. 마치 부동산 정보 서비스처럼 말이야.”
그러면서 도시 농업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카페 등에서는 그러한 중개 기능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럴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몇 분에게 그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여쭈어 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그 보단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조언해 주십니다.
“나도 땅이 없어서 남이 놀리는 땅이 없나 찾아 봤는데 도시에는 그런 땅이 생각보다 많진 않더라고. 중개 서비스가 있으면 당연히 이용해 보겠지만, 공유할 수 있는 땅이 적어 당신이 중개 수수료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것 대신 집안에서도 간단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도시농업키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난 PET병을 화분처럼 만들어서 상추를 재배해 먹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그러면서 사업 아이템을 선심 쓰듯 내어 주십니다.
“이거 말이야. 내가 해 직접 해 볼려고 아껴 둔 아이템인데, 자네한테 그냥 줄께. PET병으로 좁은 집안에서 농사를 지을려면 여러 단으로 PET병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거치대가 필요해. 그런데 그걸 직접 만드는 게 너무 번거롭다네. 아예 자네가 거치대를 만들어 팔아보는 건 어때?”
들어보니 정말 그럴 듯합니다. 검색을 해 보니 그 분처럼 PET병으로 농사짓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거치대를 파는 곳은 없습니다.
진짜 기회다 싶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쇼핑몰을 만들어야 하는데 웹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에게 월급 줄 돈이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원래 만들었던 도시농업 SNS는 사용자가 생기지 않고, 진짜 그럴듯한 사업 아이디어는 시작할 여력이 안되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정리합니다.
이 이야기는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저는 몇 해 전 인물 정보 SNS ‘고리’를 개발했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아마도 처음 창업해서 실패를 경험하신 분들도 비슷했을 겁니다.
창업해서 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아이디어를 예상 고객에게 미리 검증해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예상 고객에게 아이디어(SNS를 만들어 도시 농업인들 간의 친목 도모와 정보 공유를 돕는다)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 혹시나 다른 서비스(포털사이트와 다른 SNS 등)가 이미 그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설령 그렇다 해도 다른 서비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틈새 수요(도시 농지 공유)는 무엇인지만 미리 확인했어도 실패할 확율이 줄어들 텐데, 본인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 아이디어 보안에 대한 걱정, 하루라도 빨리 서비스를 완성하고 싶다는 조급증, 게으름 등의 이유로 그 과정을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선 아무도 원치 않는 서비스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서비스를 공개한 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서비스를 개선해나가면 되겠지만,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가용 가능한 자원을 다 소비해 버릴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의 요건을 알아내게 되었을 때는 실탄이 떨어져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결과는 폐업일테구요.
고객이 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고객이 멘토다’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요즘은 이런 저런 국비 지원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좋은 창업 멘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찾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서비스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검증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글의 가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예상 고객의 문제(땅이 아니라 PET병 거치대가 필요하다)와 거기서 비롯된 사업 기회(PET병 거치대 판매)를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서비스나 상품으로 구현한 후에 고객을 찾아가는 건 망하는 수순입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아이디어는 그저 가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고객에게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100페이지나 되는 사업 계획서도 미리 작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놓은 만큼 폐기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러가지 가설(예상 고객, 예상 고객의 문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기존 대안, 기존 대안의 한계 등)을 적은 간단한 기획안을 작성하는 게 좋습니다. 그 기획안의 용도는 검증입니다.
검증은 한 번으로 끝내면 안됩니다. 검증 결과를 반영해 가설을 수정하고, 수정된 가설을 다시 검증하고, 이런 과정을 되풀이한 끝에 더 이상 검증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을 때 제대로 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개발에 들어가야 합니다.
▲ 서비스나 제품 기획 단계에서 예상 고객의 검증을 반복하는 것을 미국 실리콘벨리에서는 ‘린스타트업’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 가설1: 도시 농업인들에게는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 검증 대상: 그런 욕구가 진짜로 있는가.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은 많은가. 그런 욕구를 해결해주고 있는 기존 대안은 없는가. 대안이 있다 해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틈새 욕구(미충족 욕구)는 없는가.
- 검증 결과: 많은 도시 농업인들에게 그런 욕구가 있지만 이미 다른 대안(포털사이트 카페와 페이스북 등의 SNS)이 존재한다. 그래도 도시 농지(건물 옥상이나 텃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시 유휴지) 정보 공유는 미충족 욕구로 남아있다.
- 가설 2: 도시 농업인들에게는 도시 농지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 검증 결과: 욕구는 크지만 공급 가능한 도시 농지가 많지 않다. 대안으로 폐 PET병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PET병 거치대를 파는 곳이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
- 가설 3: 도시 농업인들에게는 집안 농사용 PET병 거치대를 필요로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 가설 4: …
혹시 지금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이 한 문장만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객에게 검증 받지 않은 사업 아이디어는 가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