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입니다.
평소에는 카드 결제를 선호하지만 우리 동네 돈까스집에만 가면 현금을 꺼내 들게 됩니다. 행여 현금이 없을라 치면 “죄송합니다. 현금이 없네요.”라며 사과까지 하게 됩니다. 카드로 결제하든 현금으로 결제하든 그건 오로지 제 맘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진에 있는 문구 ‘음식 가격이 저렴합니다. 카드보단 현금 환영’ 때문인 듯 합니다.
얼마 전 전통시장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물건 값이 대형마트보다 싸서 장사가 잘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전통시장을 찾는 젊은 손님들이 늘면서 골치거리가 생겼답니다.
물건 값이 쌌던 건 나이 든 손님 대부분이 현금으로 결제를 해 줬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카드 결제 수수료를 아낄 수 있어서(실은 매출 신고 누락에 따른 절세분이 더 크겠죠) 그 만큼 깎아 줄 수 있었던 건데 이젠 젊은 손님들이 카드 결제를 하다 보니 더러 손해보는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물건 값을 올리자니 대형 마트보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현금 가격과 카드 가격을 달리하자니 불법을 저질러야 하고… 결국 사장님은 카드를 꺼내 드는 젊은 손님에게 현금 결제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진다고 했구요.
“손님. 현금으로 결제 해 주면 안 될까요?”
“왜요? 카드로 할 건데요.”
“물건 값이 싸잖아요. 카드로 하면 수수료가…”
“아이 참. 카드로 해 줘요.”
“젊은 사람이 야박하게…”
“카드 결제가 문제 있나요? 왜 그렇게 말씀 하시죠? 카드 결제 안 해주시면 신고할 거에요.”
“뭐요?”
우리 동네 돈까스집이나 시장 슈퍼마켓이나 값싼 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쪽 집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내밀 때 사과를 하고, 한쪽 집에서는 카드 결제를 하게 해 달라며 화를 냅니다.
도대체 그런 차이는 왜 생겨나는 걸까요.
그것은 설득의 타이밍 때문입니다.
값싸단 걸 아는 손님이라면 “값이 싸니 현금으로 결제해 주세요”라는 부탁에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설령 값싸지 않아도 현금 결제가 장사하는 분들에게 도움된다는 건 누구나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그냥 “현금으로 결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부대찌게집을 하는 제 지인의 지인(^^) 분은 딸이 써 놓은 ‘아빠는 현금을 좋아해요’를 계산대 옆에 붙이는 것만으로 재미를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겐 한 번 결정했거나 시작한 일은 다시 번복하거나 선회하려 들지 않는 본능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입장을 번복하면 입장을 정리하기까지의 고민이 허사가 되는데다 어렸을 때부터 일관성이라는 사회적 미덕을 DNA에 새겨왔기 때문입니다. (일관성의 법칙,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슈퍼마켓에서 카드를 꺼내 든 손님도 그런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미 카드 결제라는 행동을 개시했다면 뒤이어 아무리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었다 해도 현금 결제로 번복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우리 동네 돈까스집은 손님이 결제 수단을 선택하고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설득하는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그 결과 손님의 저항 없이 현금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이구요.
손님이 바꿔주길 바라는 행동이 있나요?
그렇다면, 손님이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