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브랜드 세탁백화점과 협동조합

전라도 광주에서 세탁소 사장님 세 분을 만났다. ‘세탁백화점’이라는 상호를 함께 사용하고 계신 분들인데, 4년 전부터 돈을 모아 함께 TV 광고도 하고, 세탁 자재 공동구매도 해 왔다고 한다. 내년에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형 세탁물과 특수 세탁물을 위한 공동작업장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매출은 여느 세탁소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았다. 세탁백화점 양산점의 경우 연 매출이 4억원이나 되었다. 공동브랜드 덕분이냐고 묻자, 그 보다는 공동브랜드 참여 세탁소들 각자가 시설, 기술, 서비스를 혁신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탁소를 대형화, 자동화, 전문화해서 서비스 요금과 세탁 시간, 서비스 질 등을 개선하니 돈이 절로 벌렸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공동브랜드도 일조하긴 했지만, 참여 세탁소 각자가 개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효과가 미비했을 것이라 했다. 내년에 예정된 협동조합도 마찬가지일 것이란다.

요즘 새로운 협동조합법이 발효되면서 협동조합을 향한 맹목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데, 세탁백화점 사장들과의 인터뷰는 공동브랜드나 협동조합은 혁신의 한 수단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세탁백화점의 첫 인상

세탁백화점 양산점에 들어선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세탁소에 안내데스크라니.

세탁소인지 세탁 공장인지 헷갈릴 정도로 큰 공간에는 낯선 세탁장비들이 들어서 있었다. 천장에 붙어있는 컨베이터 벨트 같은 데서는 세탁물들이 매달린 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사람도 6명이나 되었다.

맞게 찾아왔나 싶어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야 인터뷰를 약속한 유기양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사장님 두 분이 아직 안 왔거든요.”

유기양 사장은 양산점이 세탁백화점 1호점이 아닌데다, 세탁백화점이 공동 브랜드인 만큼 다른 사장들도 인터뷰에 초대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인터뷰는 세탁백화점 원조인 풍암점 박영식 사장, 양산점 유기양 사장, 의견 대립이 있을 때 나이로 눌러 교통정리를 한다는 문흥점 나상하 사장, 이렇게 세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세탁백화점 점포는 두 곳이 더 있지만, 그곳 분들은 시간과 거리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공동브랜드보다 비즈니스 혁신이 먼저

세탁백화점은 처음부터 공동브랜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박영식 사장이 구멍가게 수준의 세탁소를 대형 슈퍼마켓처럼 리모델링하면서 그에 걸맞는 상호로 바꾼 것일 뿐이었다.

그의 변신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자, 함께 친목계를 하던 다른 세탁소 사장들이 그를 벤치마킹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상호까지 똑같이 사용하게 된 것이라 했다.

박영식 사장은 오래 전부터 세탁업에 대한 혁신을 꿈꿔왔다. 세탁 서비스가 생활밀착형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세한 규모로 머무르고 있는 현실, 오랜 세월을 세탁업에 투신한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구멍가게 사장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형식이 사고를 규정한다고 했던가. 박영식 사장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세탁소를 대형화, 현대화하고 거기에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스타벅스가 커피숍 비즈니스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처럼 말이다. 무모한 발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해외 교포들은 이미 그런 세탁소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 프랜차이즈 세탁소들이 하나 둘 들어오게 되었다. 더 이상 주저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자리를 내 준 동네 다방 꼴이 될 것 같았다. 프랜차이즈 점주가 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수익성을 떠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프랜차이즈는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할 사람만 필요할 뿐, 숙련된 세탁 장인이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세탁소에 큰 투자를 감행했다. 그런데 그의 기대가 적중했다.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형태의 세탁소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것이다. 금방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다른 시와 군에서까지 고객들이 찾아왔다.

세탁백화점, 공동브랜드가 되다

박영식 사장의 변신과 성공은 같은 친목계에 참여하고 있는 세탁소 사장들을 고무시켰다. 다들 박영식 사장처럼 세탁소를 바꿔보겠다 했다. 그런데, 기왕 하는 거 세탁백화점이라는 상호를 다 함께 사용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브랜드를 통일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유기양, 나상하 사장 등이 뒤따라 세탁소를 리모델링했고, 세탁백화점은 공동 브랜드가 되었다.

이들 사장들의 협력은 브랜드를 함께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공동 브랜드는 세탁 자재 공동구매로 이어졌다. 아무리 몇 안 되는 세탁소라지만 모두가 대형세탁소였던 만큼 한데 모아진 구매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자재 구입비가 15~20%까지 줄어들었다. 앞으로 세탁백화점 참여 점포들이 더 늘어나 공장직거래가 가능해지면 더 많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프랜차이즈 세탁소의 광고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 지역민방에 광고도 진행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는 벤처기업 광고비는 할인해주지만 소상공인에게는 어떤 혜택도 주지 않는다.) 광고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었지만,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인지도 개선에는 확실한 도움이 된 것 같다 했다.

올 들어서는 분업도 시작했다. 각 점포에는 간혹 대량 세탁물이 들어오곤 하는데, 전까지는 일손이 달릴 경우 그냥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이 넘치면 다른 점포들과 나눠서 처리한다.

내년에는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작업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 동안 외주로 맡겨 온 카페트 등의 대형세탁물과 가죽, 신발 등의 특수 세탁물을 자체적으로 처리해 비용과 세탁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 5곳의 점포만으로도 투자 효율성을 올릴 수 있지만, 협동조합에 더 많은 세탁소가 참여하게 되면 그 효율성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 했다.

공동브랜드 참여 조건

여기까지 살펴보면 세탁백화점에는 많은 매력이 있다. 공동구매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광고를 할 수도 있다. 내년부터는 공동작업장을 사용할 수도 있다. 세탁소 혁신에 필요한 노하우도 전수받을 수 있다. 매출도 껑충 뛴다. 2호점인 양산점은 매출이 400%나 늘어났다고 한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처럼 가맹비조로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동구매에 대한 대가로 수수료를 떼지도 않는다.

세탁소 사장이라면 참여를 망설일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공동브랜드 참여를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세탁소 사장의 실력과 마인드다. 세탁백화점 사장들의 경력은 많게는 20년 이상이다. 이들만큼 경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세탁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만큼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세탁소가 규모와 시설이다. 세탁백화점은 몇 가지 협력활동을 제외하고는 참여 점포 각자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느슨한 연합체다. 가격이나 서비스도 제각각이다. 그런 만큼 세탁소의 규모와 시설을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라 했다.

세탁백화점, 골목세탁소의 또 다른 위협일까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다른 세탁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했다. 세탁백화점의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 속도가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넘어 다른 영세한 세탁소들에까지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세탁백화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두 번째 요건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동네 세탁소들 중 그럴만한 형편이 되는 곳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세탁백화점을 비난 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한 박영식 사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변하려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됩니다.”

사실, 세탁소의 대형화와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흐름을 무시한다면 결국엔 자본력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세탁소가 모든 시장을 잠식해버리고, 골목 시장의 부를 모두 독차지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럴 바에야 기존 세탁업자들 중 일부라도 그 흐름을 주도해 부의 극단적인 편중을 막고, 숙련된 장인을 지켜내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탁백화점과 생산자 협동조합의 데자뷰

원래 세탁백화점을 찾아갔던 것은 공동브랜드 활동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세탁백화점은 공동브랜드보다는 협동조합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세탁백화점의 현재 법적 지위가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지난 4년간 보여준 활동은 사실상 생산자 협동조합에 준했기 때문이다.

세탁백화점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생산자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주체들 각자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세탁백화점이 영세한 세탁소들의 연합체였다면 세탁백화점의 브랜드 가치는 지금과 같지 못했을 것이다. 공동 구매로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공동 광고나 공동 작업장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생산자 협동조합이 참여 주체들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탁백화점에는 규칙이 없다. 그냥 자주 만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사항들을 합의한다. 역할 분담도 그때그때 상황을 봐 가며 결정한다.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 분란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공동브랜드 이전, 친목계 시절부터 신뢰를 쌓아온 덕분인데,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우스갯소리로 끝까지 합의가 안되면 그 땐 나이 순으로 정하면 된다 했다. 그리고, 공동브랜드든 협동조합이든 정이 우선되어야지 돈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생산자 협동조합의 본질은 협동에 있지 조합이라는 형식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탁백화점은 올 들어 공동브랜드 연합체를 아예 협동조합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지금 상태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미 잘 협동하고 성과도 내고 있는데, 굳이 조합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냐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협동조합으로 각 세탁소들의 경영을 통합 관리하게 되면, 말이 좋아 협동조합이지 그것이 수직적인 지배구조를 가진 프랜차이즈와 뭐가 다르겠냐고 반문까지 했다.

하지만 공동작업장은 다른 경우다. 공동으로 투자하고 공동으로 소유해야 하는 만큼, 협동조합이 최선의 선택이라 판단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번 소셜잇수다의 요약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공동브랜드로 얻은 것이 더 있는지를 물었다.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하나같이 ‘정보 공유’를 꼽았다. 세탁업은 객관적인 서비스 표준이 없기 때문에 각 사장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에 따른다. 하지만 세탁백화점 사장들은 공동브랜드 활동 때문에라도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한다. 그 만큼 더 객관적인 시각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옷 좀 제대로 만들었으면’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세탁백화점 사장들이 붙들며 꼭 이말 만은 전해달라 했다. “요즘 옷이 너무 엉망입니다. 20년 넘는 세탁 인생 동안, 옷 품질은 계속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염색 물 빠지는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물이 많이 빠지는 것은 둘째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물질들이 섞여 나오는 것 같다 했다. 그런 옷들이 유명브랜드라서 더더욱 화가 난다 했다. 피부도 숨을 쉬는데, 사람 몸에 어떤 것들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어 걱정이라 했다.

“농부들이 피땀 흘려 재배한 농작물에 농약이라도 묻어 나올라치면 언론에서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큰 기업들이 만든 옷 상태에는 무관심합니다. 농부들은 돈이 없고, 의류 기업들은 돈이 많기 때문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탁백화점 사장들이 문제 있는 의류 브랜드 이름을 줄줄 읊어주었지만, 밝히진 않겠다. 궁금하다면 동네 세탁소 사장들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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