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과 소셜서비스, 그리고 백반집의 추억

어린 시절 백반집을 했다. 집에서 팔던 백반상은 밥, 국, 고기, 생선, 김치, 나물 등이 한 가득 올려진 다채로움과 푸짐함 그 자체였다. 우리 식당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의 식당들이 백반을 주 메뉴로 양과 음식 가짓수로 경쟁했다. 당시, ‘1식 1국 1찬’이 일상이었을 서민들에게 백반집은 최고의 외식장소였고 뷔페식당이었다. 적어도 남도에서는 그랬다. 그 시절에는 말이다.


▲ 백반상, 이미지출처 : 플리커 beckom

그랬던 백반집이 지금은 자취가 희미해졌다. 후한 밥상을 차리기에 물가가 너무 많이 뛴 탓도 있겠지만, 형편이 나아진 서민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양과 가짓수 보다는 질을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백반집들이 있던 자리는 지금 이런 저런 전문 음식점들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의 국내 포털사이트들이 과거 백반집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포털은 한 상에 다양하고 많은 정보들을 차려 주는 백반집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런 포털이 ’다양함’과 ‘풍성함’이라는 최대 경쟁력을 지켜내기가 어려워지고, 서비스가 다채롭지는 않지만 고급 정보만을 제공해 주는 다른 서비스들에 이용자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은 검색을 포함한 두어가지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뉴스, 카페, 블로그, Q&A, 이미지, 동영상, 책, 쇼핑정보, 백과사전, 게임 등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포털사이트로 성장했다. 서비스의 가지 수와 정보의 양이 중요했기에, 서로를 모방하면서도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것을 선 보이기 위해 애써왔다. 한 상에 보다 다양하게, 많이 차려 주는 것이 핵심 경쟁전략이었다. 차림 하나라도 차별화하기 위해 재료를 직접 재배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비용’이 먼저 포털사이트의 백반 상차림 경쟁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이 앞다퉈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던 동영상 서비스는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하나 둘 중단되었다. 카페나, 블로그 등도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적자가 나고 있지만 마지 못해 운영한다고 한다.

게다가, 자사의 콘텐츠를 우선으로 보여주기 위해 설계했던 폐쇄적인 검색 알고리즘은 결국 직접 가꾸어 왔던 카페, 블로그 Q&A 등의 정보 텃밭을 ‘스팸’으로 병들게 했다. 구글은 검색 결과 순위를 결정하는 데 외부링크 수를 으뜸으로 평가하기때문에 그 자체로 ’스팸’ 정보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면역체계가 제거된 국내 포털은 온라인 마케터들의 ‘스팸’  공세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기존 차림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졌지만, 새로운 차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더 힘들어 졌다. 트위터를 포함한 ‘실시간 검색’을 내 놓긴 했는데, 반쪽도 안 되는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 트위터 검색은 일부 샘플 이용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트위터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검색 제휴 비용 때문이다.

새로 생겨난 모바일과 태블릿 PC에 맞춘 서비스를 내 놓는 것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듯 보인다. 웹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 자신을 담아 내기에 이미 포털의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그 결과 ’없는 것이 없는’ 것을 최대 경쟁력으로 하는 포털에게 ‘없는 것’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더 큰 위협이 찾아 왔다. 입맛이 까다로워진 인터넷 이용자들이 하나 둘 고급 음식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터넷이용자들은 포털사이트의 상차림에 싫증이 났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중에 ‘관계’라는 깔때기로 스팸들을 말끔히 걸러내는 SNS라는 새로운 고급 음식점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매체사들의 제목 ‘낚시질’에 낚일 염려도, 광고 홍보성 블로그 포스트와 커뮤니티 게시물에 시달릴 일도, 온라인 마케터들이 짜고 치는 Q&A에 넘어갈 일도 없다. 모든 정보가 얼굴을 드러내기에 ‘스팸’ 활동자나 메시지를 찾아보기 어렵고, 지인이 추천해 주기에 더욱 믿음이 간다.

처음에는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맥 관리나 정보공유 정도에 그쳤지만 검색, 게임, Q&A, 커뮤니티 등 상차림이 계속해서 다양해지고 있다. 외부 개발자들까지 서비스 추가에 한 몫 거들고 있고, 혼재되어 있는 메시지들을 뉴스, 동영상, 이미지 등으로 필터링해 주는 서비스들도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 모든 서비스가 ‘관계’, ‘신뢰’, ‘투명성’이라는 신선하고 고급스런 재료를 사용한다. 양도 계속해서 많아지고 있다.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작은 ‘스팸’ 조차도 걸러낸다. 이렇듯 SNS에서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함께 차리는 풍성한 잔칫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SNS가 현재는 작은 고급 음식점에 불과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급 뷔페식당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 눈에는 국내 포털사이트들이 과거 백반집이 그러했듯 상차림 유지의 어려움과 고급 음식점의 등장으로 커다란 위기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 포털사이트는 정말 백반집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까? 포털사이트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던 차 네이버가 ‘소셜’시대에 맞는 새로운 상차림이라며 ‘네이버미’를 공개했다.

친구들의 소식을 한자리에 모아보고, 관심 있는 콘텐츠를 받아 볼 수 있는 ‘나’만의 소셜네트워크 공간이라고 했다. 네이버의 설명대로라면, 네이버는 높아진 인터넷 이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백반상에서 업그레이드 된 뷔페 상차림을 내 놓았을 것이다. ‘소셜’이라는 거름 장치로 나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정보만 찾아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용해 보니 기존에 있던 각종 서비스의 개인관리 기능을 한 데 모아 놓았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활동하고 있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카페, 블로그, 미투데이 정보들을 한 데 모으니 오히려 더 정신이 산만하고 혼란스러웠다. 스팸은 여과되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사도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뷔페를 기대했건만, 원래 재료에서 일부만 추려내어 뒤섞은 비빔밥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음이 ‘네이버미’에 뒤질새라 내 놓은 ‘My 소셜검색’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정보만을 대상으로 검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셜검색’이라 이름 붙이긴 했지만, ‘요즘’을 제외하고 카페 등의 다음 서비스에서 맺어진 인맥 관계가 정보를 정확하게 필터링해줄 수 있을 만큼 틈이 좁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다음이 검색 옵션 하나를 추가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베타 서비스라고 하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포털사이트들이 뷔페식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과 기존 관계망 안에서 생산되고 수집된 정보들을 재구성한 것을 새로운 서비스라 포장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새 것처럼 포장한 음식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음식의 재료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정보 생산과 수집, 정보의 탐색과 공유 방식까지도 ‘소셜’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born Social’의 토대 위에서 포털로 성장하고 있는 SNS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매섭던 추위가 눈에 묻혔다. 포근하고 풍성했던 옛날 백반집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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