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도 농장입니다. 만약 농장 5천평을 경작하고 있다면, 1천평의 사이버농장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게을리할 수 없듯이 페이스북과 블로그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죠.”
소셜잇수다에 출현한 장창현님의 말이다. 귀농 후 농사를 시작한 지 3년째, ‘직거래 100%’라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달성한 비결이다.
마음가짐만으로는 부족했을 터, 그가 어떤 실제적인 노력들을 기울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충북 음성 구레마을에 자리한 시골풍경 농장을 찾았다. 구레골 농부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동안 만나본 어떤 소셜미디어 마케터들보다도 더 깊이가 있었다. 아마도 소셜미디어 말고는 기댈 게 없었던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아래는 그의 도전기를 요약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과 걸쭉한 장창현님의 입담은 팟캐스트에서 들어볼 수 있다.
▲ 페이스북 친구에게 보낼 고구마를 포장 중인 장창현님. 친구 얼굴이 떠올라 더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농사일의 시작은 새벽 컴퓨터 부팅부터
새벽 3~4시께, 컴퓨터를 부팅하는 것으로 하루 농사 일과를 시작한다. 우천시나 뙤약볕 아래서도 농사일을 쉬지 않는 것처럼, 소셜미디어도 늘 한결같아야 한다. 농사일이 너무 많아 하루 한두 시간도 쪼개기 어렵다면, 차리리 재배 면적을 줄여서라도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각오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직거래를 생각하다
지금은 5천평을 경작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수요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농사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물로 차별화를 했다. 주로 다른 농부들이 잘 재배하지 않았던 컬러푸드 품종들을 선택했다.
자황고구마, 자색고구마, 보라감자, 빨강감자, 검정땅콩, 강황, 대학 찰옥수수, 복숭아, 고추, 아피오스 등 작물 가짓수만도 상당한데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장점이 되었다. 철마다 새로운 작물로 주제를 바꾸다 보면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지루해질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정된 농지에서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기에 고생은 늘어나고 품목당 수확량은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 또한 직거래가 안고 있는 수요의 불확실성이라는 가장 큰 위험을 줄여준다.
블로그로 시작한 판로 개척
농사를 작게 시작한 만큼 현실 세계의 지인이나 농산물 직거래 커뮤니티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도 불안했기에 블로그에 관심을 가졌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았고 (네이버) 블로그를 열고 포스트를 올리기 시작했다.
재배하는 작물별로 카테고리를 만들고 꾸준하게 재배 일기를 올렸다. 가능한 한 파종부터 수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려 노력했다. 블로그를 알려야 했기에 처음엔 이웃맺기에 주력했다. 블로그 소문내기 이벤트도 열었다. 결국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만, 처음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되는구나’ 싶었다.
한편 애초에 기대했던 현실 세계 지인들은 구매를 망설였다. 정작 주문하는 사람들은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더라.
농사 과정을 지켜본 친구와 그렇지 않은 방문자의 차이
검색 최적화에 대해 알게 된 후 블로그 포스트가 검색 결과에 잘 걸리게끔 작성하게 되면서 검색을 통해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농사의 특성 상, 같은 밭에서 자라는 작물이라도 맛과 모양이 다를 수 밖에 없을 터. 그들은 마트에서나 파는 표준 상품의 잣대로 작물을 평가했다. 기대가 충족이 안되면 실망을 표현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블로그 이웃이나 꾸준하게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내 작물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었다. 올 여름 지독한 가뭄에 타 들어 갔던 농심과 흘렸던 땀방울 하나 하나를 공유했기에 배송 받은 작물의 맛과 모양이 부족해도 이해해 주었다.
블로그 대 페이스북
페이스북 판정승이다. 블로그에도 이웃이 있긴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와 달리 페이스북은 서비스 이름대로 얼굴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그 결과 생산자와 고객 사이에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콘텐츠 노출면에서도 페이스북이 유리하다. 블로그는 검색 최적화로 방문자 수를 늘릴 수 있다지만 한계가 있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를 통해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다.
콘텐츠 생산 측면에서도 페이스북은 부담이 덜하다. 블로그는 포스트를 가득 채워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부담감이 생기지만, 페이스북은 단문, 심지어 단어 하나만으로 내 상태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
실제 성과는 어떠냐고? 당연히 페이스북이 낫다.
페이스북, 친구 5천명의 경제효과
현재 페이스북 친구 수가 2천명 남짓이다. 그 중 내 작물을 구매한 친구 비율은 약 20%다. 만약 친구가 5천명까지 늘어나고 그 정도의 구매 전환율이 유지된다면, 1인 소농으로서는 상당한 수익도 기대해 볼 만하다.
다만, 친구 한 사람 한 사람 다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수고로움은 감당해야 한다. 소셜미디어도 농장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친구는 씨앗이고, 소통과 관심은 자양분이다.
카메라는 필수 농기구
밭에 나갈 때 다른 농기구는 빼먹어도 카메라만큼은 꼭 챙긴다.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아 소셜미디어로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있지만, 블로그용 사진을 찍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경험적으로 볼 때, 글 보다는 사진이 메시지를 전하는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다른 소셜 농부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바로 사진찍기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교육에서도 사진 찍기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래서 많이 버냐고?
수입을 굳이 밝히라면 농사 짓기 전보다 좋지는 않다(그는 전문직 회사원을 하다, 사업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고객이 늘어나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최대화된다면 좋아질 거라 기대한다.
소셜미디어 친구들에게 상품을 권하는 낯뜨거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판매 정보를 올리자 당황하는 블로그 이웃들이 있었다. 그 후로는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쉬움
소셜미디어 친구, 고객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계절마다 농장으로 초대해 팜파티를 열어보고 싶지만, 1년이 기어 맞물리듯이 빠듯하게 돌아가다보니 쉽지 않다.
고객에게 월급 받는 농부를 꿈꾸다
소셜농업의 최종 귀결은 꾸러미 판매라고 본다. 이를테면 고객 100명만 두고, 그 사람들의 사계절 먹거리를 책임져 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먹거리를 찾는 수고를 줄일 수 있고, 나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어서 좋다. 사람들이 아프면 주치의를 찾듯이 먹거리도 농부를 찾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여기까지가 ‘소셜잇수다-소셜농부 장창현’ 편의 요약이다. 정부에서 소농 육성을 한다며 많은 소셜미디어 활용 교육을 한다고 들었다. 아직까지 매뉴얼 교육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번 소셜잇수다는 살아있는 체험기에 목말라했던 농심을 적셔주기에 충분하리라 본다.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소셜잇수다를 청취해 보시라.
녹화를 마치고 떠나올 때, 갓 수확한 밤고구마를 선물 받았다.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됐기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억지로 쥐어주는 걸 끝내 뿌리치지는 못했다. 집에서 고구마를 쪘는데, 장창현님이 떠올라 한 알 한 알 알뜰하게 먹었다. 고구마는 장창현님이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상품은 생산자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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