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이유는 있는 법이야.”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직거래로 부조리한 농산물 유통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했을 때, 지인이 찬물 끼얹듯 내던진 말이다. 유통 상인들은 폭리로 배를 불리지만 농민들은 빚에 허덕이는 부조리,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꿈 깨라’는 말이었다.
부조리가 고착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농사는 그 해 같은 작물을 재배할 농가가 얼마나 될지, 날씨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풍년이 들어도 공급자가 많아 가격이 원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한파·가뭄∙폭염∙태풍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한 해 농사를 송두리째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럴 바에야 남는 게 별로 없더라도 미리 밭떼기로 넘기는 편이 차라리 안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편 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교육도 받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마케팅도 해야 한다. 지인들 소개로 알음알음 직거래를 한다 해도 최소한 택배 발송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택배 차량도 제때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농사일만으로도 하루가 벅찬 농부들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재고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농산물은 쉽게 상하는 특성이 있어 절대 재고를 남겨선 안 된다. 가공식품을 만들어 보관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신고∙검사∙허가 등 법적 절차를 여러 단계 밟아야 한다.
온라인에 익숙한 생산자라면 오픈마켓에 입점해 직거래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오로지 가격을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오픈마켓에서 받을 수 있는 가격은 도매금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따져보면 직거래에는 적지 않은 번거로움과 위험이 따른다. 그런 만큼 산지 도매업자들에게 팔아버리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일 수 있겠다 싶었다.
좋다. 지인의 말대로 직거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창현, 장명숙, 정용화씨처럼 직거래를 하는 농산물 생산자들은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증가세에는 한계가 있다. 젊은 연령층의 귀촌이 활발하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농촌은 초고령화 사회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직거래가 아니라면 대안 유통을 고민하면 된다. 생산자를 대신해 제 값에 농산물을 팔아주고, 수수료도 조금만 가져가는 그런 유통 말이다.
그런데 이 또한 현실성이 부족하다. 기존 유통 업체들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직거래의 불확실성을 대신 떠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류비와 마케팅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한마디로 적은 판매 수수료를 받아서는 유통 업체를 운영하기 어렵다. 대안 유통을 내세우는 새로운 업체가 등장해도 기존 유통 업체들만큼 인지도와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제 값에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싼 값에 판매하는 데다, 판매 수수료마저 낮다면 유통 사업을 지속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없다. 지난 해 대안 유통을 표방하며 등장했던 10여 곳의 농산물 전문 소셜커머스 업체들 대부분이 도산한 것은 다 그 때문이다.
대안 유통마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일까. 그러던 차, 둘러앉은밥상(둘밥)이 눈에 띄었다.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출 늘리기에 앞서 농산물 생산자와 자신이 상생할 수 있는 기반다지기에 우선 순위를 두는 모습이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 둘밥의 홈페이지 겸 블로그. 둘밥은 쇼핑몰 없이 여기서만 농산물을 판매한다.
둘밥은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유통한다. 농산물은 대형마트나 생협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가격으로 판매하지만, 그렇다고 헐값에 내놓진 않는다. 판매 대행 수수료로 15%를 가져가는데, 이는 우리나라 농산물이 유통 단계에서 더해지는 비용이 소매가의 41.8%(지난해 전체 농산물 평균, 농수산물유통공사 발표)인 것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둘밥이 생산자들에게 친화적인 이유는 또 있다. 대개의 유통 업체들이 농산물의 규격, 가격 등 상품 자체에 초점을 맞춰 판매하는 것과 달리, 둘밥은 생산자를 프로모션한다. 둘밥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어떤 생산자가 어떤 마음가짐과 노력으로 농산물을 재배하는지를 상세하고 꾸준하게 소개한다. 그러니 농산물 생산자들은 설령 둘밥과 계약이 종료된다 해도 홀로 직거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초석까지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둘밥이다. 유통 조건이 생산자에게 유리할수록 둘밥 자신에겐 불리하다. 박리다매로 수익을 보존할 수 있겠지만, 창업 2년 째인 지금까지 둘밥이 판매한 농산물 가지수는 총 6개에 불과하다. 이렇다 할 e쇼핑몰도 없다. 단지 블로그로만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데, 벌어들이는 수익은 기껏해야 직원 2명의 월급을 충당할 정도다. 아직까지 대표가 가져가는 몫은 없다시피 하다. (물론, 생산자들이 가져간 수익은 둘밥 수수료의 5~6배 수준으로 적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둘밥이 상품 가지수를 늘리지 않는 것은 덩치 키우기에만 급급하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여타의 소셜커머스들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둘밥은 사업 규모를 작게 유지하면서 제값 판매, 적정 수수료율, 지속적인 농산물 수급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렇다면, 둘밥이 공을 들이고 있는 기반은 무엇일까.
둘밥의 한민성 대표는 소비자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업 자산이라고 말한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고서는 소비자들이 제 값을 치르지도, 반복해서 사 주지도 않는다. 둘밥은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틈틈이 농촌 도서관 만들기, 농촌 벽화 그리기, 농촌 체험 캠프 등 다양한 마을 만들기 활동을 벌이는데, 이때 지역 생산자들을 탐색하고 그들에 대한 평판 정보도 모은다. 그리고 물망에 오른 생산자들을 가급적 자주 접촉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본 후에야 유통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한 대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어머니가 농약을 치는지는 딸도 모른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다.
▲ 소셜잇수다에 출연한 둘밥 한민성 대표(우)
그렇게 검증을 마친 농촌 마을과 농가는 현재 약 50여곳이나 되는데, 둘밥은 이들의 농산물을 한꺼번에 판매하지 않는다. 자칫 고객 관리에 쏟을 수 있는 역량이 분산돼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까 우려해서다. 둘밥의 한 대표는 더디 가더라도 한 농산물마다 충분한 만족을 준 뒤에야 다음 농산물 판매로 넘어가는 것이 신뢰를 굳힐 수 있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한편 둘밥에 대한 농산물 생산자들의 신뢰도 중요한 사업 기반이다. 신뢰가 없다면, 농산물 공급자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마을 만들기 활동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확실하게 생산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맡긴 농산물을 제값에 많이 팔아주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둘밥이 적은 상품 가지수를 고집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게다가 둘밥의 매출은 몇 안 되는 농산물 중에서도 한두 가지에서만 집중적으로 생겨난다. 그렇다 보니, 매출 구성을 고르게 하는 것도 둘밥이 생산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해결해야 한다.
한편, 15%라는 낮은 판매 수수료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케팅과 유통 비용을 끊임 없이 혁신해야 한다. 둘밥은 오프라인 점포 없이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유통비가 적게 든다. 같은 유기농과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는 생협에 비해 둘밥이 경쟁력이 있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마케팅 비용이다. 지금까지 둘밥은 전혀 광고를 하지 않았다. 작년부터 생산자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홍보 달력을 만들고 배포하고 있지만, 생산자들이 부담한 비용만큼 달력으로 돌려준다.
달력을 제외한다면 둘밥은 오로지 포털사이트를 통한 검색 유입,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명 블로거를 통한 홍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로만 고객을 만들었다. 한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은, 페이스북에서 생겨난 고객이 전체 고객의 40% 정도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들이 다른 고객들보다 충성도는 물론 실제 구매액도 높다(연간 평균 136달러 더 소비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적은 상품 가지수, 낮은 판매 수수료율로만으로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단일품목 당 판매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온라인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둘밥은 오프라인 B2B 유통망 발굴에도 힘쓴다. 성북구 친환경급식센터와 함께 급식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고, 길음 뉴타운 급식센터의 생협 만들기에도 참여했다. 고객 판촉용이나 직원 선물용으로 농산물을 사줄 수 있는 기업들도 꾸준하게 영업한다. 내년께는 판매하는 농산물을 재료로 쓰는 ‘둘러앉은 밥집’도 열 계획이다.
둘밥에게 필요한 마지막 사업 기반은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수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 그런 만큼 둘밥이 기반하는 시장은 작다. 둘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소 소믈리에 단체, 슬로푸드코리아, 푸드포체인지, 키드키드맘스쿨 요리공방 등과 협력해 착한 소비 운동도 벌려나간다.
- 착한 소비: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듯, 둘밥은 생산자를 보호하면서도 자신의 수익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여러가지 도전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도전들은 스스로를 소셜커머스라 칭하는 많은 공동구매 업체들이 감당했어야 할 것들이다. 그들이 회피해버렸듯이 둘밥의 도전은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디 성공해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소셜커머스 업체 하나쯤은 자리잡을 수 있길 바란다. 지향하는 가치도 사회적이고,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도 제대로 활용하는 그런 상거래 업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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