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사를 하게 된다면 페이스북 친구들이 물건을 사 줄지 궁금할 때가 있다. 친한 친구들이야 도와주는 셈 치고 한 두 번 사 줄 수 있다지만, 그저 ‘좋아요’나 주고 받는 가벼운 사이라면 그리 내키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친구 관계를 은밀히 끊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솔직한 마음일 게다.
그런데 평범한 페이스북 사용자에서 페이스북 장사꾼으로 멋지게 변신한 사람을 찾아냈다. 여수 돌산에서 나는 특산물을 가공해 페이스북으로 파는 여수 FnC의 오일 대표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20년 동안 해외에서만 거주했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3년 전만 해도 이토추상사 홍콩지사를 나와 방글라데시에서 막 봉제 무역 사업을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던 그가 2년 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수시의 한 섬마을에 정착해 장사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의 직업 인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생선과 김치를 팔겠다고 했다. 그의 갑작스런 변신에 그의 페이스북 친구들 반응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친구들의 절반(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외 교포 친구들을 뺀 나머지 친구들의 절반)이 그의 고객이 되었다.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올린 물메기 50세트가 하루도 안 돼 동이 날 정도로 친구들 반응은 줄곧 뜨거웠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 사연을 알아보고자 여수 돌산에 있는 그를 찾아갔다.
▲ 여수FnC의 오일 대표
땅의 기운에 끌려 돌산에 정착하다
그는 해외에 살 때부터 후배를 만나러 여수 돌산을 자주 방문했다. 그럴 때마다 땅의 기운에 묘하게 끌렸다고나 할까. 왠지 이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홍콩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계속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에, 그는 여기서 할 수 있는 돈벌이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돌산에는 갓, 고들빼기라는 특산물이 나고 있었다. 부두에 나가면 갓 잡은 고등어, 삼치, 조기, 꽃게 등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모두 밥상에 자주 오르는 먹을거리들이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그 어렵다는 패션 일을 잘 해 왔던 만큼, 그는 돌산에서 나는 것들을 맛있고, 청결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로만 만들 수 있다면 파는 건 문제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한국은 인터넷이 발달돼 있어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도 장애로 여겨지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팔면 될 일이었다. 페이스북은 훌륭한 마케팅 채널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돌산에서 생선과 김치장수가 되겠노라 선언했다. 반드시 페이스북 상인으로 성공해 돌산 특산물을 해외로 수출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페이스북의 오일, 상사맨에서 생선장수로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생선과 거리가 먼 친구에서 생선을 사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생선장수가 되겠다 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오일의 이미지는 세계 각지를 누비는 ‘상사맨’이었다. 생선을 팔려면 생선장수 이미지로 변신해야 했다.
그는 생선 산지에 정착을 한 탓에 자연스레 이미지를 바꿔나갈 수 있었다. 일상 자체가 농어촌과 부둣가의 삶이었던 만큼, 생선 이야기를 페이스북의 일상 이야기 속에 쉽게 버무릴 수 있었다 했다.
그는 그렇게 해외 상사맨에서 농어촌 주민으로, 농어촌 주민에서 생선 판매업자로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하지만 페이스북으로 생선을 파는 사람도 여럿 있을 터. 생선장수라는 캐릭터에도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사람에 관심을 가진 후에야 상품에 관심이 생기는 만큼 상품 차별화에 앞서 캐릭터 차별화를 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그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캐릭터 차별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유학파 생선장수’였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생선을 사 준 이유
2011년 12월 그는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고등어와 조기를 판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첫 공지만으로 매출이 1천만원이나 나왔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생선장수로 이미지를 탈바꿈해 왔고, 첫 판매 시점이 선물세트가 많이 팔려나가는 연말 연시였던 탓도 있었지만, 그는 그보다 장사를 시작한 친구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 것이라 했다.
체면치레라. 별로 친하지 않는 친구라면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페이스북 친구들은 그와 얼마나 친했길래 그리 많이도 생선을 사 준 것일까.
당시 그의 페이스북 친구는 500명 정도였다. 그 중 해외 교포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페이스북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는 한국에 인맥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도 깊이 있는 교류를 가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이 최소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반드시 기억하고, 몇 번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허물없이 서로 호형호제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해 왔다.
소통도 그의 담벼락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이 올린 글에 댓글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 친구들과 함께 그룹 활동도 하고, 친구들 담벼락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근황을 살핀 후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현재 그의 친구는 1800명 정도. 그 중 400명이 같은 그룹 활동을 할 정도로 그는 친구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지금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친구들 담벼락을 순회한다 했다. 그룹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질 때마다 가급적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고도 했다.
그는 페이스북 장사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지, 상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친하지 않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폭넓고 깊게 소통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초짜 생선장수의 상품을 체면치레 때문에라도 사 줬을 것이라 했다.
페이스북 친구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질
현재 그의 소매 매출의 90%는 페이스북과 관련해서 발생하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가 늘어나면 매출도 덩달아 늘어날 텐데, 그는 일부러 친구 수를 늘리진 않는다. 친구가 늘어나면 관심과 소통도 분산될 터, 그 만큼 지금 친구와의 관계에 소홀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장사까지 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친구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 했다.
그래도 현재의 친구 1800명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난다고 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친구들의 절반이 상품을 사 줄 정도로 그의 친구들의 고객 전환율은 높았다. 상품이 선물용이나 식당 식자재로도 사용되는 만큼 인당 구매량도 많았다. 한 사람이 많게는 50세트, 100세트씩 주문하기도 한다.
상품이 선물로 보내질 때마다 새로운 고객도 발굴된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상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선물 받은 사람이 상품에 만족하면, 그가 동봉한 명함을 보고 주문을 한다 했다. 그런 식으로 그의 고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공유해주는 것도 효과가 있다. 현재 그의 페이스북 친구나 페이지 팬이 아닌 페이스북 사용자가 전체 고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나 된다 했다. 그들은 다 페이스북 친구들의 공유 덕분에 만들어진 고객들이었다.
상품 스토리텔링은 프로필로, 상품 소개는 페이지로
페이스북은 기본적으로 개인들 간의 소통을 하라고 있는 것이지 장사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스토리텔링을 하는 공간과 상품 소개를 하는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스토리텔링은 프로필로, 상품 소개는 페이지로 하기로 했다. 프로필로 생선 장수의 일상을 꾸준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친구들이 자연스레 상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은 구매를 하기 위해 페이지를 찾아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주 가끔은 프로필로도 상품을 직접 소개하곤 하는데, 이 정보마저도 일상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왔다 했다. 개인 프로필에서 갑자기 상품 정보를 소개하면 친구들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뭘 팔지 고민하고, 좋은 상품과 생산자를 찾아 다니고, 상품을 개발하고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한 후에 상품을 소개하면 친구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여 준다 했다. 그 상품은 그가 페이스북에서 전해온 일상과 고민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니까.
그는 그렇게 한 상품을 추가할 때마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천천히 소개하다 보니 이젠 언제 그 상품이 나오냐며 재촉하는 친구들까지 생겨났다.
가끔 찾아오는 예비 페이스북 상인들에게 하는 말
그가 페이스북으로 나름 성과를 올리는 모습이 보이자, 몇몇 분들이 그의 노하우를 들어보기 위해 돌산까지 찾아왔다. 그는 그런 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다 했다.
첫째, 산지에서 사업을 할 것. 생선이나 김치를 온라인 판매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품의 스토리텔링은 가당치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페이스북을 열심히 한들, 말할 수 있는 것들은 평범한 도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농수산 상품을 이야기하면 어색할 수 밖에 없을뿐더러 신뢰도 가지 않으리라. 하지만 산지에서 생활하면 일상 자체가 상품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되고 당연히 믿음도 갈 것이라 했다.
둘째, 지금 페이스북으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을 것. 페이스북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소통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런데 소통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서 장사부터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친구 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이야기만 떠드는 사람, 올리는 글에 ‘좋아요’가 몇 개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는 그런 사람들은 장사할 준비가 덜 됐다고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 당장 친구들의 담벼락을 찾아 다니며 최소한 점이라도 찍고 나오는 일일 것이라 했다.
그가 보내온 고등어 선물세트
인터뷰를 마치고 이틀 후 그에게서 택배가 왔다. 그가 선물로 보내온 고등어였다. 비린내가 전혀 새 나오지 않는 깔끔한 포장, 핏기가 완벽하게 제거된 채 한마리씩 진공 포장된 고등어들. 그의 선물세트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생선 선물세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요즘 페이스북으로 직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포장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냥 아는 사람과 직거래를 한다는 생각에 포장에 소홀하다면 그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상품을 구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가 1800명의 페이스북 친구만으로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그 친구들이 선물용으로 상품을 다량 구매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고객들을 만들어준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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