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습니다. 뒷좌석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니 조수석 앞 탁상캘린더에 붙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접 재배한 무공해 여주 쌀을 팝니다’
쌀 트럭도 아니고 영업용 택시에 왠 쌀 광고인가 싶어 택시 기사님께 여쭈었습니다.
“기사님, 쌀 장사 하세요?”
기사님은 부업으로 쌀 농사를 짓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말에는 택시 영업을 쉬고 논이 있는 고향 여주로 내려가신다고…
재배면적은 5천 평. 혼자서 감당하기엔 큰 규모지만 비료나 거름도 치지 않는 자연 농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농사지은 쌀을 수확하면 택시 승객들에게 파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랍니다.
제가 깜짝 놀라는 눈치를 보이자 기사님이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캘린더 광고를 보고 기사님께 말을 걸었지만, 다른 승객들은 대게 백미러에 매달린 벼를 보고 말은 건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사님은 기회를 놓칠 새라 제게 말씀하신 자연농법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으면서 무공해 쌀 자랑을 하신다는 군요.
쌀을 팔 요량으로 관심도 없는 손님에게 먼저 말을 꺼내면 손님이 싫어할 터, 기사님은 손님이 먼저 물어볼 수 있도록 ‘벼’라는 미끼를 던진 겁니다.
고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의 비결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택시 승객이 쌀 주문을 하면 기사님은 직접 택시를 몰아 쌀을 가져다 줍니다. 덤으로는 쌀겨를 끼워주는데 그게 반응이 좋습니다. 쌀겨는 피부미용 팩 재료로 쓸 수 있어 특히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기사님의 쌀겨는 무공해, 무농약이기까지 합니다.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쌀겨를, 그것도 청정 쌀겨를 거저 주니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그래서인지 한 번 기사님께 쌀을 산 승객들은 계속해서 기사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기사님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전에 무슨 일을 하셨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일했죠. 노가다를 가장 오래 한 것 같아요.”
택시기사님은 제게 마케팅이 학습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