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친구의 사전적 정의다. 문득 페이스북 친구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터무니없다는 걸 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다니.
친구 목록을 살펴보니 학연, 혈연, 지연, 직연으로 엮인 친구들을 제외하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처음엔 최소한의 신상 정보 정도는 확인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진 듯했다. 심지어 이런 분이 친구였나 싶을 정도로 낯선 이들도 많았다.
쌍방 과실이었을 게다. 뉴스피드에서 보이는 친구 이야기들을 대충 보고 흘려버린 것, 친구 담벼락에 있는 실마리들로 친구의 인격체를 짜맞춰 보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때 올리는 글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담지 않은 것은 친구들의 잘못이었다. 도대체 뉴스 링크, 음식 사진 같은 걸로 뭘 알 수 있단 말인가.
이유가 뭐였든, 뒤늦게라도 친구들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친구 프로필의 소개란과 타임라인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친구들의 실체를 그려나갔다. 그렇게 해도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친구들은 도리가 없었다. 친구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가깝게 오래 ‘사귈’ 사람이라면 최소한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만 했다.
며칠 후에야 내 페이스북 인맥 관리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사이버 세상에서 만난 사람은 사이버 세상에서만 소통을 해 왔다.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분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인생이 보인다고 했던가. 직접 얼굴을 맞댄 적이 있었다면 별 것 아닌 음식 사진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과 인격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을.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친구를 탓했던 것이다.
이번 소셜잇수다는 이러한 깨달음을 준 이규상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를 만난 목적은 페이스북 활용기를 들어보기 위함이었지만, 그 이야기에 감춰진 행간의 의미를 읽으려면 그의 인생사부터 들어봐야 한다.
▲ 소셜잇수다에 출연한 재무설계사 이규상님
신학도, 재무설계사가 되다.
그는 신학대를 나오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지만 학생운동 이력 때문인지 번번이 낙방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도중에 결혼을 하고 첫 아이까지 태어나게 되면서 생계 전선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가 취업한 곳은 주간 신문사였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시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관리자가 된 그에게 회사는 광고 영업을 시키기 시작했다. 한때 목회자를 꿈꿨던 그였기에 광고 영업을 하는 기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뒀고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보험회사 재무설계사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이다.
바닥에서 접한 페이스북
재무설계사가 된 그가 처음 찾아간 사람은 친한 친구였다. 친구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신학을 전공하고 학생운동까지 한 사람이 어찌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냐”며 역정이었다. 그는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 일이 있은 뒤론 지인을 찾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는 그때부터 부자들만 찾아다녔다. 그리고 3년이 지날 무렵에는 꽤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돈이 많은 곳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했던가. 그의 주위에 사업을 하자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보험 영업도 그렇고, 부자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은 더더욱 내키지 않았기에 그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것이라곤 빚 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재무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지인도 가리지 않기로 했다. 당시는 함께 신학을 공부했던 동기와 선후배들이 어엿한 담임목사로 자리를 잡고 있던 때였다. 그는 전국 교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업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는 지인들의 격려와 위로가 더욱 절실했다.
그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페이스북에 담은 팔도 유랑기
그는 2010년부터 3개월을 주기로 전국을 순회했다. 하루 동안에만 도시 세 곳을 들르는 일도 허다했다. 페이스북은 그의 유랑을 기록하는 용도로 썼다. 주로 현재 머무르고 있는 장소와 먹은 음식, 그리고 이동 동선에 대한 것들을 올렸다.
첫 3개월 동안 페이스북 친구들의 반응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니 별종 정도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가 다음 3개월 동안 전국 순회를 반복하자, 페이스북 친구들의 반응은 ‘대단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로 전국을 순회하자 그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전국을 유랑하는 그의 사연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각 지방에 있는 페이스북 친구들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댓글과 쪽지를 받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친구 972명과의 만남
그는 페이스북 친구를 직접 만나게 되면서 온라인 소통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만남을 가진 후에는 친구들의 음식 사진 하나에도 행간의 의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맛있겠네요’라고 형식적인 댓글을 달 때, 그는 ‘요즘은 여유가 좀 생겼나 보네요’, ‘이젠 건강이 나아졌나봐요’라며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댓글을 달 수 있었다.
오프라인 만남이 관계와 소통의 질을 극적으로 변화시켜준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페이스북 친구가 4700여명까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에 만날 사람은 충분했다. 많게는 한 달에 30명의 페이스북 친구와 약속을 잡기도 했다. 지방에 내려갈 때는 번개 모임을 열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동안을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그와 일면식이 있는 페이스북 친구 수가 972명에 이르게 되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영업이란
그가 관계의 깊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고객은 끈끈한 관계에서 파생되는 하나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페이스북 친구들과 질 높은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레 상부상조도 하게 될 터. 재무 설계는 그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들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굳이 보험 상품을 팔지 않아도 특별한 도움을 얻지 않아도 소통에서 얻는 위로와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했다.
그는 전통적인 영업은 상품을 팔 때까지 사람을 쫓아다니는 일이었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의 영업은 달라야 할 것이라 했다. 그는 온라인 소통과 오프라인 만남으로 상대방을 알아가고, 앎을 통해 상대방에게 보험이 필요하다 판단 될 때 비로소 보험상품을 제안했다. 그런 방식 덕분일까. 그의 고객 보험 유지율은 100%를 기록중이다.
그는 전통적인 영업은 고객으로부터 선택받는 일이었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의 영업은 고객을 선택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객은 어찌 보면 친구들보다 더 많은 삶의 부분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이이기에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덕분이었다. 그는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의 프로필과 활동을 살펴보면 평생의 파트너로 적합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경험 상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공개하는 친구들이 실제로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그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만날 사람이 없어 영업을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핑계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이젠 고객을 찾겠다는 생각에서 고객을 선택하겠단 생각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페이스북 친구를 고객으로
총선 이후의 불경기 탓인지 지난해 3월과 4월 그의 영업 실적은 최악이었다. 두 달 동안 집에 가져다 준 돈이 거의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염치 불구하고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보험상품을 소개했다.
당시는 암보험료가 인상되기 직전이었는데, 그는 친구들에게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보름 동안 20명의 페이스북 친구와 계약을 했다.
성과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다른 고객들을 소개해주었고, 모임에 초대도 해주었다. 페이스북으로 영업 좀 하라고 성화인 분들도 있었다.
예전부터 그의 프로필 소개란에는 직업이 명기돼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제서야 그의 직업을 알게 됐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라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는 페이스북 친구들을 만날 때 절대 명함을 내밀지 않는다 했다. 명함을 주는 순간 인간 이규상을 보험 영업사원 이규상으로 규정해 버릴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업 욕심이 난다 해도 기회는 언제든 열려 있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했다. 일반적인 보험 영업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만큼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을 봐야 하지만, 페이스북 친구들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기에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기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는 단 한 차례 상품을 소개한 것만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렇다고 그는 계속해서 상품들을 소개하진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 전념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공개된 공간 페이스북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일상, 생각, 가족 이야기 등을 가감 없이 올렸다. 심지어 보디페인팅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할수록, 그의 친구들 역시 그에게 깊은 속내를 드러내 주었다.
물론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상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보험 설계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보험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는 정보 같은 것들을 소개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보험 영업 사원이 아닌, 언제든 친구들의 재무상담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페이스북 친구 중 100명 정도가 그의 고객이 돼 주었다.
그가 페이스북 친구들을 관리하는 법
그는 470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을 ‘눈빛을 보여주세요’ 리스트에 등록해 그들의 업데이트를 놓치지 않고 살핀다 했다. 아는 것이 많아야 첫 만남에도 친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친한 사람 리스트로 등록하고, 그 중 더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들은 따로 ‘마음을 보여주세요’ 리스트에 등록하고 온라인 소통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했다.
부담 없이 부탁을 할 만한 가까운 지인이나, 정말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은 ‘행동을 보여주세요’ 리스트에 등록하고, 행동을 보여준 친구들은 ‘고객’ 리스트에 등록한다 했다.
인맥 네트워크의 가치를 더하다
그는 두세 달이 지나면 페이스북 친구 5천명, 그 중 실제로 만나본 친구가 1천여명이 될 것이라 했다. 그때가 되면 만나본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 계획이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소통하며 검증을 마친 친구들인 만큼, 그 친구들을 연결해주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파티를 열고 나면 자신의 인맥 네트워크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 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인맥 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복잡해질수록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질 테고, 그 만큼 그의 인맥 네트워크와 그 네트워크를 주관하는 그의 가치 또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며
여기까지가 이번 소셜잇수다의 주인공 이규상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는 재무설계사라기 보다 인맥자산 관리사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인맥 자산을 만들고 불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핵심은 오프라인 만남에 있었다.
그의 말대로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 사귄 친구라도 온전한 한 인격체로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그 친구가 올리는 파편적인 정보에서도 행간의 의미가 드러났을 것이다. 행간의 의미가 드러나면 깊이 있는 소통도 가능했을 것이다.
사이버 친구도 평생 동안 소통을 이어갈 텐데, 의미 없는 소통만 반복해야 한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깝겠는가.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몇 시간 만남만으로도 평생 동안의 소통과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면 그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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